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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호정의 킥오프] ‘비겨도 된다’는 위험하다. 멕시코를 ‘이기자’

한국경제투데이 2016-08-08 (월) 20:30 7년전 1050  


독일과의 2016 리우 올림픽 남자 축구 조별리그 2라운드는 근래 국제대회에서 한국이 펼친 가장 치열하면서도 공격적인 경기였다. 최상의 스쿼드가 아니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유럽 내 유명 클럽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젊은 선수들로 구성된 독일은 피지와는 비교될 수 없는 속도와 압박, 개인 기량을 갖고 있었다. 예상했던 상대의 빠른 템포에 한국은 고전했지만 잘 준비된 전략과 적절한 교체 타이밍, 막판 체력전의 우세에 힘입어 후반 42분엔 3-2로 리드를 잡기도 했다.

마지막 추가 시간 1분을 남기고 통한의 동점골을 내주며 다 잡았던 8강이 모래처럼 손에서 빠져나가고 말았다. 독일을 꺾었다면 2승으로 D조의 포르투갈에 이어 두번째로 8강 진출을 확정할 수 있었다. 그럴 경우 마지막 경기에는 체력 안배와 고른 선수 투입을 하며 여유 있는 토너먼트가 가능했다. “독일전에 올인하겠다”는 다짐을 그라운드에서 증명해내며 목표에 다가갔던 신태용 감독으로선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에 없었다.

독일전에서 한국이 보여준 경기력은 아쉬움보다는 희망이 컸다. 피지라는 이번 대회 최약체를 상대로 거둔 대승으로 확신을 갖기 어려웠던 경기력에 믿음을 갖게 됐다. 이제 8강으로 가기 위한 마지막 산은 한국 시간으로 11일 새벽 브라질리아에서 열리는 멕시코와의 C조 최종전이다. 피지가 멕시코를 상대로 선전한 덕에 ‘비기기만 해도’ 한국은 골득실에 힘입어 C조 2위를 확보하게 된다. 하지만 그 ‘비겨도 된다’는 상황이 한국에겐 가장 큰 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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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6년의 차붐을 연상시킨 손흥민의 존재감

독일은 벤더 형제를 중심으로 한 강한 압박과 간격 유지로 신태용호의 장기인 연계 플레이를 저지했다. 전반에 한국은 한때 3대7에 가깝게 볼 점유율이 밀리며 독일의 빠른 공격을 밀어내는 데 힘을 쏟아야 했다. 문창진, 권창훈 등 연계 플레이의 중심에 선 선수들이 여유 있게 공을 잡지 못했다. 자칫 중원 싸움에서 완전히 밀린 채 일방적으로 흐름을 내줄 수 있었다. 한국의 버팀목은 손흥민이었다. 손흥민은 유일하게 독일 선수들 사이에서 공을 소유하고, 자신감 있게 돌파했다. 허리 싸움을 위해 손흥민은 하프라인에 가깝게 내려와 공 소유를 늘려줬고 그를 거친 플레이가 황희찬에게 연결되며 독일의 전진이 어느 정도 저지됐다. 후반 들어서 ‘파이터’ 이찬동이 투입되고 권창훈과 박용우의 패스 줄기가 살아나며 손흥민은 전진했고 본연의 공격적인 역할을 시작했다.

1-2로 끌려가던 후반 12분 손흥민은 사실상 개인 전술로 동점골을 만들어냈다. 골키퍼 김동준의 긴 킥을 컨트롤했고, 황희찬이 넘겨주자 그대로 잡아서 문전까지 돌파해 독일의 골키퍼 티모 호른의 가랑이 사이를 통과하는 슛을 성공시켰다. 독일 수비진은 공간을 주지 않기 위해 최대한 견제했지만 손흥민에겐 그 작은 틈도 놓치지 않는 클래스가 있었다. 후반 42분 석현준의 역전골 장면에서도 손흥민은 중요한 관여를 했다. 장현수의 긴 침투패스가 오른쪽 측면으로 나아가 이슬찬에게 연결될 때 손흥민은 페널티박스가 아닌 뒤로 빠져나와 다음 상황에 대비했다. 이슬찬이 독일 수비진에 공을 뺏겼지만 미리 뒤로 빠져 있던 손흥민이 재차 잡아 이슬찬에게 연결을 했고, 이것이 크로스로 연결돼 석현준의 골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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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특급 유망주들을 상대로 리듬을 조율하고 자신 있게 돌파하는 손흥민은 군계일학이었다. 그의 자신감은 팀 전체의 자신감으로 전염됐다. 그런 모습은 1986 멕시코월드컵 당시의 차범근을 떠올리게 했다. 당시 차범근도 조직력을 이유로 자신의 선발을 반대하는 일부의 의견에 부딪혔지만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의 수준을 상회하는 클래스를 선보였다. 비록 골은 없었지만 아르헨티나,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선수들이 차범근 마크에 골몰했고 그로 인해 난 공간에서 다른 선수들이 득점할 수 있었다. 최고의 무대에서 뛸 수 있고, 높은 연봉과 이적료에는 이유가 있음을 보여줬다. 손흥민도 마찬가지였다. 경기 전 독일 코칭스태프는 손흥민 집중 마크는 없다고 선언했지만 경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수비 2~3명이 손흥민을 쫓아야 했다.

왜 신태용 감독이 지난 시즌의 활약과 경기력에 대한 여론의 우려를 뒤로 하고 가장 먼저 손흥민을 와일드카드로 선택했는지의 이유가 독일전의 활약으로 입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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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두 장면이 아쉬웠던 경기 운영

신태용 감독은 전략가답게 독일을 상대로 치밀한 준비를 했고, 경기 중 대응도 뛰어났다. 일각에서 예상한 쓰리백 전술은 없었지만 잘 준비된 세트피스 전략이 황희찬의 선제골을 만들었다. 최규백의 부상으로 인한 선택이었지만 후반에 터프한 수비형 미드필더 이찬동을 투입해 중원 싸움을 대등하게 만들어간 것도 뛰어난 선택이었다. 석현준과 류승우의 교체 타임과 그를 통해 얻은 소득도 탁월했다. 독일 중앙의 두터운 벽을 뚫는 데 고전하자 측면을 중심으로 경기를 풀고, 장현수와 박용우의 정확한 롱 패스로 단번에 수비 배후를 노리는 유연한 전술 대응도 돋보였다.

그런 경기 운영은 3-2 재역전으로 이어졌고 신태용 감독의 결단과 선택들은 ‘신의 한 수’가 되는 듯 했다. 아쉬운 것은 경기 막판의 두 장면이었다. 역전골 이후 한국은 라인을 올린 독일을 상대로 한번 더 역습에 성공했고 결정적인 패스가 문전으로 배달됐지만 석현준이 마무리에 실패했다. 추가시간에는 손흥민이 상대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위험 지역에 프리킥을 내줬다. 나브리의 프리킥 장면에서 수비벽이 완벽히 차단하지 못했고 결국 공이 맞고 굴절되며 동점골로 이어졌다.

미리 준비한 송주훈을 위한 골 세리머니부터 다양한 루트로 득점을 만든 공격 전술까지, 최근 가장 화려했고 기념비적인 승리가 될 수 있던 경기가 1분 앞두고 두 차례의 작은 미스로 무승부로 마무리 된 것은 아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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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겨도 된다’는 가장 위험한 시나리오다

멕시코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한국은 비겨도 조 2위를 확보할 수 있다. 멕시코를 상대로 선제골을 넣으며 선전해 준 피지 덕분에 골 득실차에서 크게 앞서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기 후 신태용 감독이 강조했듯이 ‘비겨도 되는’ 상황이 한국에겐 가장 위험한 적이 될 수 있다. 비기기 위한, 혹은 비겨도 된다고 생각하는 경기 운영은 곧잘 패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이다. 당시 한국은 1차전에서 가나에 1-0으로 승리했고, 2차전에서 멕시코와 0-0으로 비기며 1승 1무 상태로 최종전을 앞뒀다. 골득실 +1로 멕시코와 공동 1위 상태였다. 비기기만 해도 8강 진출 확정이었고 상대는 이미 2패로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된 이탈리아였다. 이탈리아전에서 전반 24분 브란카에게 선제골을 내줬지만 후반 17분 터진 이기형의 동점골로 원하던 시나리오로 갔다. 그러나 그 상태를 지키자는 수비적인 운영은 후반 37분 브란카의 두번째 골을 불렀다. 결국, 1-2로 패배하며 가장 극적으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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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2002년 한일월드컵은 이긴다는 자세가 만들어 낸 최상의 결과물이었다. 2라운드까지 1승 1무로 조 1위였지만 상황에 따라 미국이나 포르투갈에 역전 당할 수도 있는 한국이었다. 비겨도 조 2위가 가능했지만 히딩크 감독은 마지막까지 승리를 위해 밀어붙였다. 함께 16강에 가자던 루이스 피구의 간절한 부탁을 승리로 외면하며 한국은 조 1위로 16강에 진출, 4강 신화의 서막을 알렸다.

물론 2010년 남아공월드컵, 2012년 런던올림픽처럼 비기고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며 목적을 달성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 경기 내용은 그야말로 진땀을 흘렸다. ‘비겨도 된다’가 만든 위험이었다. 이기기 위한 적극적인 경기 운영이 최소 무승부를 담보할 수 있다. 상대인 멕시코는 비길 경우 탈락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을 상대로 이긴다는 자세로 나올 것이 확실하다. 그런 멕시코를 상대로 우리도 침착하게 대응하면서 공격을 할 때는 적극적으로 과감한 자세로 골을 노려야 한다. 피지전에서, 독일전에서 신태용호는 어떤 팀을 상대로든 골을 넣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줬다. 이긴다는 목표로 조별리그 마지막 라운드에 임할 때 8강은 우리에게 올 수 밖에 없다.

 

글=서호정

사진=연합뉴스

 

기사제공 서호정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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